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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8일, 매일경제가 전한 NYT 보도(2026-05-08)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차단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이란이 카스피해를 새로운 수송로로 활용할 가능성을 분석했다. 이 보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중동 긴장 고조를 알리는 뉴스가 아니라, 이란이 스스로의 ‘출구 전략’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를 봉쇄 카드로 쓰면서 동시에 카스피해를 탈출로로 구상하는 이 이중 구도는,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를 분석할 때 빠트리기 어려운 구조적 변수다.
호르무즈 카드의 뒷면 — 왜 카스피해인가
호르무즈 해협은 EIA(미국 에너지정보청) 기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2023년 기준 공개 통계). 이란은 오랫동안 이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카드를 대외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 딜레마가 있다. 이란이 실제로 호르무즈를 막는다면, 이란 자신의 원유 수출 경로도 함께 차단된다. 이란 원유는 이 해협을 통해 아시아·유럽 시장으로 향한다. 봉쇄는 상대방만 묶는 카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발도 함께 묶는 양날의 수단이다.
2018년 미국의 JCPOA(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이어진 대이란 석유 제재는 이란이 공식 경로로 원유를 수출하는 선택지를 이미 대폭 좁혀 놓았다. 제재 환경에서 이란은 비공식·우회 경로를 통해 원유를 수출해 왔고, EIA 추정 기준 2024년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약 300만 배럴 수준이다. 이 물량을 소화할 대체 경로를 사전에 확보해 두려는 동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합리적이다.
NYT 보도가 짚은 카스피해 시나리오는 바로 이 맥락에서 읽힌다. 호르무즈를 봉쇄 카드로 활용하되, 자국 물자는 카스피해를 통해 북쪽으로 돌린다는 설계다. “협박 카드의 뒷면을 미리 그려두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대안 경로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비로소 호르무즈 봉쇄 카드의 사용 가능성도 높아지는 구조다.
카스피해의 지정학적 구조 — 러시아와의 내해
카스피해는 이란·러시아·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 5개국이 접경하는 내해다. 외해와 연결되지 않는 폐쇄형 수역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국제 해양법 적용이 아닌 연안국 간 협약으로 관리된다. 2018년 5개국은 카스피해 법적 지위에 관한 ‘아크타우 협약’을 체결해 군사·항행·자원 개발에 관한 기본 틀을 마련했다. 이 협약 체계 안에서 이란은 카스피해를 통한 물자 이동 경로를 합법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이미 갖추고 있다.
이 지리 구조에서 결정적인 변수는 러시아다. 카스피해 북쪽 연안의 최대 국가인 러시아는 이란과 마찬가지로 서방 제재 하에 놓여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 에너지 제재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격화됐다. 이란의 2018년 제재 재부과와 러시아의 2022년 제재는 시점은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기존 서방 중심 무역 경로를 대체할 대안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서 이해관계가 수렴하게 됐다.
제가 보기엔, 카스피해는 이 두 나라가 물리적으로 맞닿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란에서 출발한 물자가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 남부 항만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내륙 철도망을 통해 북쪽으로 분산되는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구상은 양국이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논의해 온 경로다. INSTC는 인도 뭄바이에서 이란을 거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약 7,200km 구간의 복합 운송 회랑으로, 카스피해 구간은 그 핵심 링크에 해당한다. 이 구도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면, 비서방 블록의 물류 결속이 카스피해를 무대로 구체화되는 그림이 된다.
에너지 시장 영향과 3가지 시나리오
NYT 보도가 다룬 이란의 카스피해 수송로 활용 가능성은 에너지 시장에 3가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3가지 시나리오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석을 복잡하게 만든다.
시나리오 ①: 카스피해가 호르무즈 봉쇄 충격의 완충재 역할. 이란이 카스피해를 통해 자국 물자를 일정 부분 이동시킬 수 있다면, 호르무즈 봉쇄가 실제로 발생하더라도 에너지 공급 단절의 충격이 일부 희석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호르무즈 긴장 고조 시마다 WTI 원유 선물가는 단기 급등 패턴을 반복해 왔는데(FRED WTI 원유 선물가격 데이터 참조), 대안 경로의 존재는 이 충격의 지속 기간과 폭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출구가 아예 없는 봉쇄”와 “한쪽 우회로가 살아 있는 봉쇄”는 시장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시나리오 ②: 카스피해 항로가 상징적 카드에 그침. 카스피해 항로의 실제 물동량 처리 능력이 호르무즈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면, 이 대안은 협상 테이블에서 흔드는 카드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EIA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하루 원유 물동량은 2023년 기준 약 2,100만 배럴에 달한다. 이 규모에 비해 카스피해 항로가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은 인프라 제약 때문에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출구가 있다”와 “출구가 충분하다”는 다른 이야기다. 인프라가 받쳐 주지 않으면 전략은 그림에 머무른다.
시나리오 ③: 이란-러시아 블록 결속이 서방 추가 제재 빌미를 제공. 양국 간 협력이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구체화되면, 서방은 이를 제재 강화의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G7·EU의 에너지 제재위원회가 새로운 제재 도입을 검토할 경우, 단기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카스피해 대안의 경제적 이점이 추가 제재로 상쇄되고, 지정학 리스크가 심화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다.
세 시나리오가 동시에 진행될 때, 국제 유가·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BOK)에서도 중동 지역의 지정학 리스크는 반복적으로 국내 에너지 수입 비용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영향을 미쳐 온 변수로 다뤄진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 구조상, 호르무즈-카스피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는 에너지 관련 기업 실적과 전반적인 물가 수준에도 연동된다.
반대 시각 — 물동량 한계와 제재 역풍
카스피해 수송로의 실효성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우선 물리적 인프라 문제다. 이란 카스피해 연안의 주요 항만인 반다르-안잘리와 아미라바드는 대형 유조선 접안이 제한적이다. 카스피해 자체의 수심과 규모도 대규모 원유 수송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니다. 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은 이미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을 통해 흑해로 원유를 수출하는 별도 경로를 갖추고 있어, 이란의 접근을 우선적으로 수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
제재 역풍 리스크도 실질적이다. 미국의 이란 석유 제재는 제3국 기업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관여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를 부과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러시아를 포함한 카스피해 연안국들이 이란과 공개적인 에너지 협력을 구체화하는 데 제동을 건다. 이란-러시아 협력이 표면화될수록,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 적용 명분도 강해진다. 2022년 이후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가 강화된 상황에서, 러시아가 이란과의 협력으로 추가 제재 위험을 부담하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중앙아시아 연안국들의 입장도 변수다.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서방 에너지 회사들과 긴밀한 사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EU와의 경제 관계를 훼손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러시아 블록에 편입되려는 유인이 제한적이다. 카스피해 수송로가 이란의 기대대로 작동하려면 이들 연안국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그 협력의 강도와 범위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적 이득 사이에서 개별 국가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다.
결국 구조적 한계, 제재 역풍, 연안국 협력의 불확실성이라는 3개 층위의 제약이 겹쳐 있다. 이란의 카스피해 전략이 실제 물류 역량을 갖춘 대안으로 발전할지, 아니면 협상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한 신호에 머물지는 이 제약들이 어떻게 해소되느냐에 달려 있다.
모니터링 포인트
이 주제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때 유효한 모니터링 항목은 4가지다.
① 호르무즈 긴장 지표 — 주간 단위 확인. 이란-미국 협상 교착 또는 군사 동향 보도가 발생할 때 FRED WTI 원유 선물가격이 배럴당 70달러를 상회하는지 여부를 기준 지표로 삼는다. WTI가 이 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회한다면 호르무즈 긴장이 에너지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② 카스피해 항로 협력 진전 — 이란·러시아 정상급 회담, INSTC 관련 에너지 협약 체결 뉴스 발생 시. 카스피해 항만 처리량 또는 무역 협약 규모 관련 양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모니터링한다. 협력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물동량 수치나 투자 약정으로 이어지는지가 실질 진전의 기준이다.
③ 서방 추가 제재 동향 — 이란-러시아 협력 강화 보도 이후 G7·EU 제재위원회 동향을 추적한다. 신규 에너지 제재 도입 발표가 WTI·천연가스 선물가에 즉각 반영되는지 확인한다. 제재 강화 신호가 에너지 가격 상승을 동반하면, 시나리오 ③(제재 역풍)이 현실화되는 초기 국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④ 국내 에너지 수입 비용 — 분기별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에서 원유 수입 단가 전년 동기 대비(YoY) 변동률을 모니터링한다. 이 수치가 +10%를 초과하는 분기가 2개 이상 연속되면,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국내 에너지 비용과 인플레이션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호르무즈 차단 가능성과 카스피해 대안 경로의 실효성은 현재 시점에서 모두 불확실하지만, 이 두 변수가 동시에 가동되기 시작하는 순간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는 질적으로 달라진다. 이란의 카스피해 전략은 협박 카드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이며, 그 실현 가능성은 위의 4개 지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달려 있다.